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하일 8세 (문단 편집) ==== 도망치는 집토끼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한 미하일은 1204년 이전으로 제국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을 펼쳤다. 수도의 성벽을 수리하고, 교회와 병원을 정화하고, 다시 유럽령 영토가 제국의 중심부가 될 수 있도록 복구 및 정복사업을 펼치는 등 대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것이 당연지사. 기존의 중심지였던 비티니아와 이오니아 지역으로부터 인력과 자원이 유럽으로 빠져나가자 소아시아의 주민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고, 구 제국령 수복을 위한 군비확장 때문에 중과세가 이어지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라스카리스 황실에 대한 처우도 불만을 키웠다. 11살의 어린 황제 [[요안니스 4세]]는 눈이 뽑혀 폐위당했고,[* 이 사건으로 요안니스 4세의 누나인 불가리아의 황후 이레네와 불가리아의 차르 콘스탄틴 아센 1세가 분노해 불가리아 제국과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니케아 제국]]은 지방정권[* Despotate. 군주국, 전제군주국, 친왕부 등으로 번역된다.]으로 격하되었다. 섭정 명의로 황제가 된 자가 정통 황제를 하극상했음은 물론, 영웅 [[테오도로스 1세]]와 명군 [[요안니스 3세]], 그리고 그들의 후손 [[테오도로스 2세]]와 [[요안니스 4세]]의 가계가 부정당한 것이다. 요안니스 4세의 눈을 뽑은 시점에서 라스카리스의 정통성을 잃었고, 어차피 욕 먹을 동네의 자원을 쪽쪽 빨아다 콘스탄티노플에 쏟아부우며 마지막 지지까지 상실했다. 결국 다양한 요소가 결합한 끝에, 이러한 불만은 요안니스 4세의 후견인이었던 [[아르세니오스 아우토리아노스]] [[세계 총대주교]]의 황제 파문으로 폭발했다. 명목상으론 요안니스 4세를 실명시키고 폐위시킨 것이 이유였으나, 소아시아의 주민들은 니케아 제국에 대한 향수와 현정부에 대한 실망을 가진 차에 중과세까지 이어지자 아르세니오스 세계 총대주교에게 공감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